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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간호사 로봇이 나타났다 (2)

by it와 함께라면 202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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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로봇 감정 노동으로의 대안

 

의료 행위는 감정의 컨트롤이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감정 노동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접객이나 접대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다소 감정 노동이 수반되는 것이다.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때로는 공감할 수 없는 것에 티를 내지 못하고 우울할 때도 밝게 행동하는 것 등 어떤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거나 듣고도 꼭 참고 일을 해야 하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환자나 그 가족과 직접 대치하는 의료 종사자도 이러한 감정 노동이 요구되고 있어 그 부담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 최근 주목받게 되었다.

 

환자 중에는 질병과 그 고통에서 자포자기해서 의료 종사자에게 폭력을 하거나 폭언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질병 자체가 폭력적인 행동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료 종사자의 측면에서 봐도 접하기 쉬운 환자도 있고 접하기 힘든 환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자에 기대어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의료 종사자의 일이다라고 해도 감정을 완전히 눌러 죽이는 것은 쉽게 할 수는 없고, 감정을 억제하고 일을 해도, 그것 자체가 힘든 정신적 부담이 될 것이다.

 

사실, "과로사 등의 산재 보상 상황 '에 따르면, 2009 년도부터 2019 년도까지의 11 년간'고객 및 거래처로부터 클레임을 받았다"는 이유로 83 명이 산재 인증되어 중 26 명이 자살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감정 노동에 묶을 수는 없지만, 감정 노동에 의한 근로자의 정신적 부담을완화하거나 제거하는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AI 로봇의 도입 활약이 기대되는 곳이다.

 

만약 AI 로봇이 이러한 감정 노동이 중요한 곳에서 대체 혹은 보조 할 수 있다면, 의료 종사자의 정신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전망은 그리 어두운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감정 노동을 AI 로봇이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의 세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우리는 누구나가 환자의 입장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매일 여러가지 서비스를 받으며 누군가에게 감정 노동을 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질병이나 재해로 인해 문의를 했을 때 시간이 걸리거나,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서툴 거나하면 AI 로봇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당신이 받은 관심과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전하려고 했는데, 귀찮은 사람이라고 판단되어 AI 로봇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당신의 불만은 그것을 통해 해소되는 것일까. 오히려 불만이 증가할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 AI 로봇이라고 깨닫는 순간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 것을 생각하는 계기로 치매 환자와 소통하는 AI 로봇에 대해 생각해 보자.

 

 

치매 환자와 소통하는 AI 로봇

 

치매 환자와 소통하는 AI 로봇은 우리의 세계에 어떤 파장을 불러 올 것인가. 

최근 치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치매 환자의 행동에 대해서도 분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치매 환자의 행동에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환자를 밀착 관리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만약 이것을 AI 로봇이 수행하고 그 행위가 치매 환자에게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어떨까. 우리는 미래에 치매되에 걸렸을  때, AI 로봇이 곁에 있어, AI 로봇과 대화를 계속하고 싶을까. AI 로봇이 식사나 배설의 시중을 들고, 거기에 당신과 AI 로봇이 아닌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어쩌면 치매 환자에게는 자신들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해주지 않는 의료 종사자와 가족보다 AI 로봇과 교감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치매 환자에 기대어 귀를 기울여주는 AI 로봇은 머지않아 등장할 것이다.

 

그때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상상해 보라.

 

카프카의 단편에 "법의 문 '이라는 소설이 있다. 시골에서 온 사람이 율법 속으로 들어가는 허가증을 문지기에게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남자는 몇 년에 걸쳐 이런저런 방법으로 부탁하지만, 결국 법의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채 이야기가 끝난다.

 

이 소설의 해석은 제쳐두고, 만약 만일 남자와 문지기가 AI 로봇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주는 인상은 실제와 다른 것이 될까. 문지기와 남자가 모두 AI 로봇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게 될까. 당신이 그 세계는 받아들여질까.

 

사람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로봇에게 시키고 싶은 미래

 

사람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로봇이 했으면 하는 일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존심이나 수치심에 관한 것으로서, 성인일수록 배설의 시중을 사람에게 원치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 다만 어떤 노동이 사람이 직접 할 것인지 어떤 노동이 사람이 직접 하기 싫은 것인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선긋기를 할 수 없고, 사람에 행해 원하는 것도 가족은 좋아하지만 가족 이외의 의료 종사자에게는 실시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소 가족들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가족들 앞에서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와 가치는 매우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이들을 적절히 평가하는 것이 요구된다. 지원을 받는 환자의 이러한 요구와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그야말로 사람이 판단할 것인가 AI가 판단 할 것인지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람은 실시하고 싶지 않은 노동이 바로 AI 로봇의 활약이 기대되는 곳일지도 모른다.

 

간호사 로봇의 결론은?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 AI 로봇이 어디까지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왔다. 사람과 접하는 일이나 업무가 속속 자동화 · 기계화된 AI 로봇으로 대체되는 가운데 환자에 기대어 귀를 기울이는 대인 원조는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사람 이해야 할 일로서 성역 같이 생각되어왔다.

 

그런데 이러한 대인 원조를 AI 로봇은 기술적으로 실시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수용 해 가는가 하는 것으로 있다. 적어도 의료 현장에서의 대인 원조에 AI 로봇이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자 중에는 인간 이해야 할 인간에 실시될 것에 대하여 일정한 이미지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 <인간 이해야 할 일>이란 무엇 일까.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인간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 일까.

 

AI 로봇이 행하는 있게 되어 온 일의 대부분은 한때 인간이 행했고 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AI 로봇이 당연한 듯이 행하고 있는 것도 한때 인간 만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것은 적지 않다. 따라서 지금 인간이 해야 할 노동도  언젠가는 AI 로봇이 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될지도 모르며, 우리는 사람이 수행해야 할 노동과 AI 로봇의 노동에 잣대를 가지고 구별해야 하는 것이 의미 없어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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